제11장, 둘: 멕시코 혁명은...
제11장, 둘: 멕시코 혁명은...
앞에서 우리는 180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상황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1492년의 사건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고정화와 혼혈 과정을 통해 새로운 라틴아메리카라는 정체성을 탄생시켰습니다. 이것이 독립을 통해 특별한 변화를 주지 못한 채 일부 상위 계층 간의 자리바꿈에 불과한 독립을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변화가 없다는 표현은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처지에서 본 것이지요. 오히려 일반 민중들의 삶은 훨씬 더 어려워진 겁니다. 서구의 모델을 가지고, 서구의 가치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커다란 밑그림 속에서 원주민이나 혼혈은 부정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서구적인 것, 가장 서구적인 사람, 가장 서구적인 가치만이 긍정적인 것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한 서구적인 것에서 멀어질수록 그 중요성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원주민들의 소외와 더불어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문제인 민중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됩니다. 결국 이것이 멕시코 혁명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30여 년간의 독재 정권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재자 뽀르피리오 디아스는 당시의 상황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적 인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디아스 정권은, 그리고 그의 정책은 그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 기득권층의 거대한 흐름이었습니다. 즉, 디아스가 아니라 당시의 사회 전체가, 그리고 그러한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멕시코 혁명이라는 민중의 저항을 만든 원인이 된 것입니다.
1492년 이후부터 끊임없이 핍박받았던 민중이 처음으로,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기존의 가치에 저항합니다. 이러한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에밀리아노 사빠따Emiliano Zapata입니다. 그는 ‘땅과 자유Tierra y libertad’라는 구호로 이제까지의 부당함을 어떠한 타협도 없이 이상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적인 것은 그야말로 이상만을 남긴 채 현실과 접목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진보 혁명은 보수 색깔을 가진 기득권층에 의하여 좌절됩니다. 그러나 사빠따로 대표되는 민중의 목소리는 많은 부분 현실에 적용됩니다. 1917년에 제정된 헌법이 그것이요, 이후의 까르데나스Lázaro Cárdenas 대통령이 보여준 친민중적 정치 역시 이러한 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80여 년간 멕시코의 공식 여당이었던 제도혁명당(PRI: 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혁명이 완전히 그 이상을 실현하지는 못하였지만 멕시코 국민들의,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존재를 보여주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더 이러한 압제를 참고만 살지 않는다.’ 소위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고, 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