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끝판왕...

그럼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중남미 국가들은 자존심이 무척 강합니다. 뭐 자존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자존심 없는 나라가 어디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특이한 형태로 자존심이 강합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우리가 워낙 외교 면에서 자존심이 없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들이 자존심이 강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특이성, 특히 자존심을 이해하는 것이 그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유럽의 블록화에 따라 미국을 주축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블록화(FTAA)하려고 하지만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자존심과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걸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남미를 완전히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면, 미군이라면 그냥 고개 숙이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에 절대 충성하지 않을뿐더러 늘 적당히 버팅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미국이 국제 무역의 힘을 이용하여 쿠바를 경제 봉쇄할 목적으로 만든 헴스버튼(Helms Burton) 법안에 대항합니다. 멕시코가 석유 지원을 해주는 등 경제 협력을 강화하며 보여준 중남미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미국이 쿠바를 경제 봉쇄 조치하고 쿠바에게 협력하는 나라들은 모두 박살 내버리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것을 멋있는 말로 바꾸면 쿠바와 통상 무역을 하는 기업체는 미국과의 어떠한 경제 관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이 법안이 통과하기가 무섭게 멕시코 정부는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미국 눈치 안 보고 가장 중요한 경제 물자 가운데 하나인 석유를 쿠바에 공급해줍니다. 국민은 국민대로 민간차원에서 구호물자를 보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필자는 ! 이것이 주권 국가의 자존심이구나.”라는 생각에 한없이 부러워했습니다.

중남미는 우리의 습관화된 기본 외교와 정치 패턴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깊이 있는 공부를 통해서만이 그들을 이해하고 협력을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이해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는 매우 제한되고 일차적인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88년 이전의 접근 방식이 아닌 좀 더 심도 있는 접근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새로운 이해 방식의 시작이 기존의 미국식, 또는 서양식 라틴아메리카 이해 방식의 탈피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히 따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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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수도 외우기는 이제 그만

이제는 말 몇 마디 할 줄 안다고 해서 그 나라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국제 감각은 이미 오래전에 마감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학습 역시 이런 점에서 더욱 심도 있고 광범위한 연구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면에서 이해하면, 이제는 단순히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를 파는 시대가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를 만드는 기계를 파는 시대 혹은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콘텐츠를 파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전의 텔레비전을 직접 팔던 시대와는 이해와 접근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더욱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전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대략 이해하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부분의 전문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전문가가 학문의 배경을 이루어야 합니다.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외국을 제대로 이해하여 한국의 경제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도 중남미에 대하여 이전과는 달리 심도 있는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멕시코의 수도가 멕시코 시티이고, 추픽추라는 잉까 도시가 있는 나라가 페루라는 것을 외우는 정도에서 그치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 왜 전격적으로 세워졌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갈 때이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 페론 정권이 가진 역사적인 팩트를 잘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가지고 비판과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할 때입니다. 미국의 해석이, 프랑스 학자의 주장이 항상 옭은 것은 아닙니다. 그 누구의 이야기와 생각을 배워서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는 수준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 원천을 비판하고 토의하여 우리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겠지요. 차츰차츰 만들어가야 할 것이기는 합니다. 성급히 지금 마구 강조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 상에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라틴아메리카가 중요하다, 특히 경제면에서 중요하다, 그러니 전보다 깊이 공부해서 돈 많이 버는 데 이바지하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전처럼 그냥 막연히 접근하면 안 되고 공부를 많이 해서 그들을 전보다 더욱 확실히 이해해야 그들의 정치와 경제의 변화 속에서 돈을 좀 벌 수 있겠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그들은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근본과 현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크게는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작게는 소비 구조와 무역 정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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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은 이제 그만

하지만 이제는 라틴아메리카를 공부하는 데 좀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왜냐고요?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으니까요.

쌍팔년이란 말을 합니다. ‘88년 이전에는 이러했는데 88년 이후부터는 이렇게 바뀌었다, 그러니 88년 이전의 것은 지나간 과거의 것이다, 지금은 맞지 않는다.’ 88년이란 말은 대강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88년이 라틴아메리카 공부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걸까요? 88년 서울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은 일부 특별한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휴가 때 외국으로 여행을 간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서민층에서는 말입니다. 일단 관광을 목적으로 한 여권이란 것이 없었으니까요. 이 말을 하면 학생들이 못 믿겠다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실입니다. 88년 이전에만 해도 관광을 목적으로 여권을 만든다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었고 그러다 보니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도 폼잡을 일이었습니다. 외국과의 교류가 지금에 비해 엄청나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국에 대한 정보도 아주 미미했고, 학문적인 접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누가 미국에 가서 몇 개월 살다 오면 혀가 꼬부라져서 한국말을 잘 못 하는 줄 알았습니다. 재미교포가 신랑감 1위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국이라는 곳이 마냥 환상적인 미지의 세계, 동경의 대상이 되던 때가 있었지요. 그 정도로 외국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해의 정도가 형편없었습니다. 그런데 88년을 계기로 한국 사람들도 외국으로 나가기 시작하고, 한국의 거리에서도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환상들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88년 이전만 해도 외국어가 외국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고, 그곳에서 얼마간 체험해 보는 정도의 수준이 대상 국가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한계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외국에 대한 이해 수준도 엄청난 발전을 하였습니다. 당연히 외교, 무역, 국제 협력, 문화 교류 등도 88년이라는 상징적인 시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준은 아직도 쌍팔년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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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돈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라틴음악, , 음식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하루가 다르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에스빠냐어로 부르는 노래가사를 듣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그 이외에도 중남미의 고유한 음식이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중남미가 지구촌에서 상당히 친근한 이웃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분야에서도 한국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제 중남미가 우리의 중요한 경제 상대국이라는 점은 명확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라틴아메리카를 공부해야 하는 일차원적인 당위성을 말할 때 이 점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우리들이 라틴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사람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이 당장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서라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무역 상대국인 미국, 일본, 유럽, 아시아 등지의 관계를 언제나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한국 무역 수지 흑자액의 반 가까이가 중남미와의 교역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 다른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에서 적자 본 것을 메우는 곳이 라틴아메리카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서방 국가와의 무역량이 많아지면 무역 적자가 많아지고, 라틴아메리카와의 무역량이 많아지면 무역 흑자가 많아집니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이고 단편적으로 쉽게 결론 낼 일은 아니고 다른 많은 변수가 있지만, 아무튼 한국의 경우 중남미와의 경제 협력이 다른 어떤 지역의 경제 협력보다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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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잘 살려면 라틴아메리카

돈 좀 되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중남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국가입니다. 세계 경제적인 측면에서 혹은 우리나라의 관점으로 본 경제 파트너로서 중남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 보다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국가 숫자로는 대략 30개가 넘는 독립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멕시코 1개국, 중미 7개국, 남미 12개국 및 카리브 13개국) 여기에 일부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민지까지 합치면 거의 40여 개 국가 정도의 규모입니다. 전 세계 국가 수가 대략 200여 개 정도이니 이 중에 20% 정도가 중남미 국가가 되는 셈입니다. 땅덩어리 넓은 것 또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총면적이 2.055한반도의 약 94에 달합니다. 여기에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이 있고, 자원의 보고 안데스산맥도 있네요. 남극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인구 면에서도 매력적입니다. 중남미의 전체 인구는 거의 7억에 가깝습니다. 대략 봐도 지구에 사는 사람 열 명에 한 명은 중남미 사람이라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먹는 거, 입는 거, 돈 쓰는 거로 봐서도 중남미는 중요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거기에 더하여 그들의 소비 성향이나 구조 면에서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구매력도 높습니다. 더군다나 개발도상국들이 많다 보니 우리나라가 비교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차량, 가전 등을 비롯한 소비재 생산품들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곳이 중남미 지역이기도 합니다. 나이에 따른 인구구성 비율면에서도 젊은층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의 경제 활성화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듯 우리나라가 제일 먼저 자유무역 협정을 맺은 곳이 중남미의 칠레이고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중남미는 가치가 아주 높은 우리의 미래 시장입니다.

단순히 한국의 수출 대상지라는 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남미는 자원면에서 석유를 시작으로 구리, , 은을 포함해 희귀금속 등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원민족주의가 등장하고 다각적 국제 관계가 중시되고 있는 시기에 당연히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자원들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핵심적인 파트너가 되는 셈입니다.

또한 이런 나라들의 결속력 또한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식민지 기간 동안 비슷한 유사한 역사를 공유하다 보니 다양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어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외교 등에서 통합의 움직임이 강합니다. 거대한 라틴아메리카 블록이 만들어지게 되면 세계 경제에서의 중요성이나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예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적 중요성: 30개국, 인구 7, 넓은 땅, 활성화된 소비시장, 많은 천연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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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이용해 먹어야 하는 라틴아메리카?

이런 말을 첫머리에 하려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뻔한 결론으로 이끌어 가야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뻔한 결론이 필자가 중남미를 공부하게 된 동기도 아니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나름의 애정을 품고 있는 이유도 아닙니다. 그 뻔한 결론은, 그들은 앞서지 않아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것은 없으니 그들의 낙후성을 이용하여 진출하면 돈 벌 기회가 좀 많다, 그 나라들을 공부해서 돈 많이 벌어 부~자 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서양 사람들도 못 사는 나라들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해서 그렇게 잘 이용해 먹음으로써 잘살게 되었으니 우리도 관심 가지고 잘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를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로 만드는 초석이 되게 합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지금까지는 우리만 열심히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우리의 경제 규모도 커졌고 소위 선진국이 되었으니 남의 나라의 것을 이용 (혹은 착취??) 해야만 한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서양의 선진국이야 우리에게 이용만 당할 정도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라틴아메리카 같이 말랑해 보이는 나라를 공부해서 잘 해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라틴아메리카는 가장 좋은 대상 지역입니다. 상대적으로 만만하니까요.

복잡한 문제인 새로운 제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유보하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거시적 측면에서 그러한 논의를 꾸준히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건 나쁜 짓이니 하지 맙시다.”와 같은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일련의 역사 과정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을 제국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새롭게 따져볼 필요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아무튼 라틴아메리카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인류의 문제, 문화의 문제, 인간의 삶의 문제 등 시시콜콜하게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걸 일반화시켜서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면, 중남미를 공부하는 두 가지 목적은 형이하학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정리됩니다. 여기서는 이 두 가지 즉, 라틴아메리카를 공부하는 돈 되는 이야기(경제적인 이유)와 돈 안 되는 이야기(비경제적인 이유)를 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 돈 되는 이야기를 먼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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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라틴아메리카 바라보기, 돈 되는 이야기

 

 

돈 많은 나라가 훌륭한 나라?

요즘 세계화라는 용어가 아주 식상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더 중요해(?) 보이는 나라들도 많은데 왜 하필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훌륭한 선진국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틈틈이 머리를 식히기 정도로 하는 라틴아메리카 공부 이상의 가치가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멕시코의 문화는, 칠레의 문학은, 그리고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인 벨리세의 역사는 프랑스, 영국, 미국의 그것에 비하여 결코 의미 없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단순 무식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 등과 관련하여 우열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에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과테말라의 역사와 문화가 서양의 그것에 비하여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니건만 우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는 알아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과테말라 멘추 여사가 알리려는 원주민들 탄압의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노벨상까지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형편이 그러니 과테말라에 관해서 관심조차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과 집중에 따른 당연한 결과입니다. , 좋은 나라의 것은 죽어라 배우고 익힘으로써 우리도 그들처럼 잘 살자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른바 후진 나라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겠습니까? 뭐 좀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하려면 서양의 어디 어디를 들먹여야 하고, ‘이러지 맙시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류의 부정적인 사례를 들 때나 아르헨티나가 등장하고 베네수엘라 이야기를 합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서 도대체 뭣에 쓴단 말입니까?

우리나라의 교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벤치마킹한다며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이 이러니저러니 말들을 합니다. 그럴 때 남미의 어느 도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환경보호의 선진성을 이야기할 때 에콰도르나 칠레를 예로 든다면 누가 귓등으로나 듣겠습니까. 영국이나 독일, 스웨덴 정도는 되어야 그래도 우리가 본받을 나라, 좀 더 나아가 배울 만한 나라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에 관해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돈 많은 나라 = 훌륭한 나라 못 사는 나라 = 배울 필요가 없는 나라
서양 = 공부해보자 기타 나라 = 굳이 뭐 공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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