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기 싫어하는 당신이 위대하다.
송영복
우리나라는 광풍의 나라다. 한번 막걸리가 유행하면 마치 막걸리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술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광풍이 분다. 포도주도 그렇게 지나갔고, 위스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커피도 그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마실 것, 먹을 것, 입을 것 등에 그치지 않고 삶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오래전에 테니스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모든 사람이 골프 이야기를 하더니 요즘은 달리기 열풍인가 한다. 언젠가 제주도 올레길이 엄청났다. 그리고 지금은 산티아고 둘레길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런 현상이, 그야말로 지나가는 유행에 불과하니 다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름의 이유와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다. 그러나 뭐든 절대적인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는 그런 신기루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마치 연애와 같다. 콩까풀이 씌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임의 눈망울만 반짝 반짝 작은 별이 되는 것과 같다. 아무리 그것이 잠시라 한들 그 반짝이표 눈망울을 어찌 덧없다 하리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고 다른 현실이 보이기 마련이다.
한편, 크게 보면 ‘민주주의’ 같은 것도 유행일 수 있다. 수렵 채집이 유행하다 정착 농경 생활이 대세가 된다. 그러다가 왕이 다스리는 세상이 생겨나고, 공화정이 광풍이 된다. 때론 사회주의가 유행하다가 삼권분립의 정치 제도가 오늘날 득세를 한다. 노예가 없는 혹은 양반이 없는 세상을 상상도 못 하다가 어느새 보편 평등국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랑 이야기를 거쳐 장황한 역사 이야기까지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다. 생각보다 그 유행이라는 것이 광범위하고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그것도 상당히 시대적인 산물에 불과하고 언젠가는 시들고 지나갈 수 있다는 점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생각해 보자.
자 그러면 독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나. 이 정도 밑자락을 깔아야 워낙 모든 사람이 당연하고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독서의 신격화에 대한 의심의 씨알이라도 좀 먹힐까 한다. 독서의 좋은 점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여기서 별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니 독서가 어떻게 유행에 불과한지 그리고 그런 유행이 어떻게 없어질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보자. 다시 강조하지만, 독서가 가진 장점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서도 좋지만, 그 너머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워낙 오래전부터 –최소한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독서 광풍이 꺼져본 적이 없으니, 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마음의 양식을 가질 수 있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정말이지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아왔다. 책을 읽겠다고 하면 아빠 엄마도 텔레비전을 끄고 모두 조용히 해주는 분위기였다. 과부 달러 빛을 내서라도 책은 사준다. 이런 전설적 분위기는 오늘날에도 전혀 식지 않았다. 다양한 종류의 책방이 생기고, 독서 관련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며 유행의 정점을 새롭게 갱신하고 있다. 그렇게 독서 열풍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부는 이때 독서가 사실은 별거 아니라는 말을 하려니 계속 서설이 길어진다.
일단 독서는 우리가 마음의 양식을 쌓는데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말을 직접 듣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책 한 줄 안 읽어도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로 모든 지식을 섭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일 수 있다. 공자님 맹자님에서부터 예수님 부처님도 형편없는 독서인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변변한 책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런 현인들의 독서량은 어려서부터 위인전, 과학 도서를 끼고 살아 쥐라기 시대 공룡의 이름을 줄줄이 꾀는 우리나라 유치원 아이들과 비교해도 형편없을 것이다. 공자시대에는 헤겔도 없었고, 이순신 장군도 태어나지 않았으며, 김동인의 감자는커녕 소설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그렇게 권장도서 한 권 읽어 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인류 최고의 훌륭한 사람으로 불린다.
사실 독서가 인류의 역사에서 대중화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말이 좋아서 인쇄술이 발달이 어떻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직지심체요절이 있었다지만 사실 대중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100여 년도 안 된 전통이다.
또한 방법적인 면에서도 독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시골 농부는 곡식이 익어가는 것을 보며, 개미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인간을 이해하였다. 자연을 바라보며 우주의 본질에 더욱 명징하게 간파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잉까(Inca) 사람들은 우아까(Huaca)라고 부르는 경이로운 자연으로부터 지혜와 아름다움을 구한다.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명상을 통해, 예수님은 골고다의 고행을 통해 그 어떤 책에도 쓰여 있지 않은 진리와 교감한다.
이렇듯 그것이 진리가 되었건 아니면 절대 선이 되었건 독서만을 통해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독서는 아주 좋은 것일 수 있지만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자.
죽어도 독서가 안 맞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독서하기 힘든 사람, 독서가 잘 맞지 않는 사람, 독서를 해 봐야 별로 즐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아주 잘 살고 있다. 마치 커피가 유행하지만 커피를 안 마셔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도 귀에 못이 박히게 독서하라는 소리를 듣다 보니 독서를 안 하면 뭔가 부족한 사람, 교양이 없는 사람 혹은 뒤처진 사람으로 느끼게 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신은 무슨 무슨 책들의 제목을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에게 주눅이 들었는가? 말끝마다 “누구의 말에 의하면…”, “누구의 작품에 의하면…” 등등의 말이 마냥 멋있게만 느껴졌는가? 독서를 하자거나, 독서는 어쩌고저쩌고 등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보았는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럴 필요도 없다. 연초가 되면 올해는 몇 권의 책을 읽겠다고 결심하고 또다시 좌절도 해보았는가? 그런 당신은 훌륭한 독서인 보다도 훨씬 더 멋진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라. 엄청난 독서를 뽐내는 사람들은 멋지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 자체로 멋지고 훌륭하거나 행복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책 없이 더 깊은 진리에 이를 수도 있음을 발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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