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둘: 쿠바는 어떤 나라?
쿠바라고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나라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쿠바는 그렇게 큰 나라도 아닙니다. 전체 국토 면적 110,922평방㎢로 한반도(99,500㎢)에 비해 약간 큰 섬나라입니다. 인구는 11,210,000명 정도로 우리나라 오천만과 비교해 1/5 수준이니 인구밀도는 낮습니다. 그런데 이 쿠바섬은 1492년 이전까지만 해도 별 독특한 것 없이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살던 곳이었는데, 유럽사람들이 침략을 한 1492년부터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합니다. 식민지 이후 지금까지 이어오는 역사를 통해 애당초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죽임을 당해 지금은 원주민들이 단 한 명도 살아남아 있지 않아요. 이게 천지개벽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다른 것들의 변화도 엄청나겠지요.
쿠바는 식민지 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에스빠냐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 전초기지로 1511년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부왕청이 만들어져 통치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곳인 만큼 시련도 많이 겪습니다. 1500년대 중반부터 해적들이 출몰하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프랑스의 해적들이 부왕청이 있는 아바나를 봉쇄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에스빠냐 사람들에게 있어서 쿠바는 끝까지 지켜내야 할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 지역이 독립하거나 다른 나라의 손에 넘어가더라도 끝까지 쿠바만은 놓지 않고 지켜냅니다.
1700년대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작물인 담배가 들어와 중요한 생산품이 되고 이에 따른 농업의 발달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하여 노예들이 대거 유입되게 됩니다. 국제 교역 중심지로 발달하면서 전 세계 설탕의 3분의 1이 쿠바에서 생산될 정도로 사탕수수 농업이 발달합니다. 이때부터 미국과의 무역도 중요하게 됩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게 있으며 경제가 발전한데다 인구도 늘어나고 있는 나라인 미국과의 관계가 부상합니다. 한편 1800년대를 넘어서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 나라는 독립을 하는데 쿠바만큼은 에스빠냐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고, 그렇게 쿠바는 에스빠냐 지배를 이어갑니다.
1853년 미국이 쿠바를 매입하겠다고 제안을 해오기도 하였지만 에스빠냐는 버팁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의 열망을 완전히 틀어막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쿠바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야욕을 키워갑니다. 급기야 1868년 소위 야라선언Grito de Yara을 시발점으로 독립 투쟁이 시작되고, 1881년에는 쿠바 독립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호세 마르띠José Martí가 뉴욕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아갑니다.
여기에서 뉴욕이라고 하는 장소에서 쿠바의 독립운동이 펼쳐졌다고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에스빠냐가 지배하는 쿠바보다 독립된 쿠바 그렇지만 미국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쿠바가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테니 쿠바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미국의 속내는 미국과 에스빠냐의 다툼으로 발전합니다. 1898년 – 쿠바 앞바다에 정박해있던 미국 선박 메인호의 원인 모를 화재를 발단으로 미국과 에스빠냐가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게 말이 좋아 원인 모를 화재이지 실질적으로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배에 스스로 불을 질러 전쟁의 구실을 만들었던 스토리가 상당히 많습니다. 미국 독립의 역사에서 등장한 보스턴 차 사건이 그렇고 상대적으로 최근에는 베트남과의 전쟁을 불러일으킨 통킹만 사건도 이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하여간 미국은 이렇게 시작한 전쟁에서 에스빠냐를 묵사발로 만들었고 패전국 에스빠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에스빠냐는 필리핀, 쿠바, 괌,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빼앗기게 됩니다. 그야말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화려했던 에스빠냐의 영광이 모두 잿더미가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스빠냐에서는 이 전쟁이 시작된 1898년을 상징해 소위 ‘98세대’ 라고 하는 염세적이고 패배적인 문화적 성찰이 있습니다. 이때의 좌절이 얼마나 컸으면 문학 사조가 됐을 정도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세계를 호령하던 한 나라가 철저히 몰락한 것입니다.
에스빠냐는 그렇다 치고 쿠바는 미국과 에스빠냐 전쟁의 결과로 독립을 하게 되는데 이후 1898-1902년 기간 동안 미국이 쿠바에서 군정을 실시합니다. 이후 1902년부터 미군이 철수하기는 하였지만 그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전혀 아닙니다. 쿠바섬의 일부인 관따나모Guantánamo 지역을 미국에 넘겨주고 쿠바의 독자적인 국제 협약을 금지하는 플래트 수정안이 쿠바 헌법에 명시되는 등 미국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1933년에는 바띠스따(Fulgencio Batista)가 구테타를 통해 정권을 잡아 친미 독재를 실시합니다.
바띠스따는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바나나 농장 노동자, 식당 종업원, 이발사를 거친 무학의 군인 출신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미국의 비호하에 지식인 탄압, 부정부패, 보수 유산자 계급 옹호, 대학 폐쇄, 반대 세력 추방 등을 통해 정권을 공고히 해 나아가며 25년 넘게 장기 집권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빈부격차, 부의 독점, 부정부패가 심화하면서 혁명이 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