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일곱: 역사의 인물 노리에가
파나마가 미국으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을 하는 예고편에 또리호스가 주인공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인 반미 스펙터클을 펼친 대통령이 탄생합니다. 노리에가Manuel Antonio Noriega(1938~2017)입니다. 앞에서 본 또리호스와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의 인물입니다. 사실상 파나마라고 하는 나라는 공식적인 군대가 존재하지 않고 국가방위대나 경찰 정도만이 존재하는데, 그런 곳에서 군인 출신이 정치의 큰 맥락을 이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무력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비민주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역시 페루의 육군사관학교를 나왔고 파나마로 돌아와서는 국가방위대 장교로 임관하여 또리호스와 친분을 쌓게 됩니다.
그런데 이후의 행보에서 특이한 점은 미국과의 관계입니다. 국가방위대의 중요한 부서인 정보부의 장교가 되면서 미국 정보기관과 아주 긴밀한(?) 협조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딱히 공식적으로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미국 정보기관의 요원이었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미국의 협조와 방조 아래 정치적인 입지를 넓혀나가게 됩니다. 결국 1981년 또리호스가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 그가 국가방위대를 장악하고 여기의 수장이 됩니다. 실질적인 대통령이 된 셈이지요. 그 이후 그의 정치적인 행위와 평가는 엇갈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파나마 운하와 관련된 사항입니다. 또리호스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사이에 맺은 파나마 운하 반환 협정을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을 빚은 것입니다. 미국은 이 조약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고 노리에가는 이에 대한 이행을 강력히 촉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파나마의 위상을 높이고 미국으로부터의 실질적인 독립을 위해서 파나마 방위대를 정규군화 시키려는 시도도 합니다.
미국이 파나마의 이웃 나라인 니카라과의 민주 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반정부군을 도왔다는 점을 바로 이전의 니카라과 편에서 보았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반정부군을 돕기 위해 주변 국가의 협조가 필요했고 노리에가는 이때 파나마 국가방위대의 실권자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미국이 주는 표창장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마약 단속을 도운 공으로 받은 상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미국과 노리에가가 아주 긴밀한 협력자 관계였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리에가가 무럭무럭 자라나서 대통령이 됩니다. 이제 더는 예전의 애송이가 아닙니다. 미국에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하는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이 생겨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요구가 파나마 운화와 관련될 것이라는 추정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집니다. 니카라과에 대한 불법적인 미국의 군사 개입에 대하여 잘 알고 있던 노리에가가 이 러한 미국의 약점을 가지고 미국 정부와 줄다리기를 벌였겠지요. 이렇게 애매하게 이야기 드리는 점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관련 내용이 온전히 밝혀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그 과정과 결과들을 가지고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간 이제 미국은 그를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니카라과나 쿠바 같은 경우에서도 보았고, 다른 더 많은 예가 무수히 많은 것처럼, 미국은 중남미의 대통령이 독재자인가 아닌가 혹은 정당한가 아닌가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정권이 문제가 많더라도 친미라고 한다면 묵고 할 뿐만 아니라 방조하고 부추기기까지 한 예가 전 세계에 넘쳐나니까요.
1989년에는 노리에가에 반대하는 군사 쿠데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미국은 경제봉쇄조치를 단행하여 파나마의 경제를 꼬꾸라뜨립니다. 항상 하는 기본적인 수순이지요. 그러나 노리에가와 파나마는 저항합니다. 결국 미국은 스스로 칼을 뽑아 듭니다. 미군은 '저스트 코즈'(Just Cause)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정당한 이유’라는 작전명은 미국이 파나마의 독재자를 벌주는 것이 정당하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유엔UN마져도 찬성 75, 반대 20, 기권 40으로 미국의 파나마 침공은 국제법을 위반한 명백한 부당행위“flagrant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라고 의결합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애당초부터 너무나 뻔한 것이었습니다. 변변한 군대조차 없는 파나마에 세계최강의 미국이 침공을 했는데 그것도 파나마 영토 안에 주둔해 있는 미군의 협조를 받아서 작전을 수행했으니 파나마가 이를 격퇴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습니다. 민간인 사망자만 3000명이 넘습니다. 미군은 23명 파나마 군은 314명이 사망합니다. 물론 나라마다 기관마다 사상자 통계 수치는 차이가 큽니다. 하여간 보름도 안 돼 전쟁은 맥없이 끝납니다. 1990년 1월 3일 노리에가는 미군에게 잡혀 미국으로 끌려갑니다. 죄목은 마약 밀매와 독재, 불법 자금세탁, 인권 탄압……. 뭐 대강 그런 겁니다. 파나마 군은 방위대로 다시 위상이 격하되었습니다. 노리에가 자신은 파나마로 돌아가 파나마 사람에게 재판받을 것을 희망했으나 그게 어디 언감생심 가능한 일이었겠습니까. 1992년 7월 미국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는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로 양도됩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 등은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파나마에 운하를 돌려준 조치는 잘못된 결정일 뿐만 아니라 미국 국익에 반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지금까지도 미국 내에서 팽배합니다.
노리에가는 이후 미국에서의 감금 생활을 하다 다시 프랑스에 수감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국인 파나마로 이송되어 감옥에서 지내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가택 연금 상태로 집에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2017년 자택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그가 꼭 하고 싶어서 반미를 했다고 말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내부의 부정부패 등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약 밀매에도 관여한 정황이 있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노리에가에 대한 평가와 역사의 본질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반미를 하는 중남미의 대통령은 응징된다는 것이 당시 미국의 철칙이었고, 그 철칙이 잘 지켜졌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