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셋: 아르헨티나의 국모 에비타
저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에비따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각기 다른 평가를 합니다. 당연한 거지요. 이승만에 대한,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한국에서 갈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세대 차이가 큽니다. 에비따는 50~6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에비따는 못 가진 자에게 - 이들을 뻬론 당에서는 웃통을 벗고 일하는 노동자라는 뜻을 가진 데스까미사도Descamisados라고 불렀죠- 처음으로 희망을 준 사람입니다. 정치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일단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 이후에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당시의, 그리고 오늘날의 에비따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평생을 하인으로 살아 온 한 여인의 아들은 엄마가 일하는 주인집의 아들이 타는 자전거가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자전거 하나 사주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자전거는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라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지요. 평생 그런 부러움을 가지고 살아온 어머니는 운명과도 같은 자신의 처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에비따가 그 아들에게 자전거를 보내온 것입니다. 학교도 가게 해 주고 무료로 여름 캠프를 보내 주기도 하였습니다. 몇백 년간 그녀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당연히 자신과 주인집 어른과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그야말로 언감생심 그들과 비슷해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단 한 번도 할 수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던 사람들에게 보여준 변화의 가능성은 에비따 시대를 산 민중들의 횃불이 되었습니다.
저는 에비따를 생각할 때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평가서를 읽거나 토론할 때마다 스스로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비따의 정책을 뽀뿔리스모(포퓰리즘, 대중 인기 영합주의)Populismo라고 비하합니다. 저도 일정 부분은 공감합니다. 자전거 사주고, 학교 만들어 주느라 정부의 재정이 바닥나고 경제가 어려워져서 결국은 나중에 더 힘들게 되었다는 비판 역시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득권은, 권력자는, 돈 많은 기업가들은 항상 지금은 때가 아니니 나중을 위해 참으라고만 해왔습니다.
“지금은 어려우니 회사를 위해서 좀 희생해라, 나중에 회사 잘 되면 월급 올려줄게.”,
“지금은 일단 돈을 벌어야 할 때니 허리띠 졸라매고 희생해라. 그래야 희망이 있단 말야!”
우리는 이런 말을 참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순진한 우리 국민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열심히, 그야말로 충성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발전해도 항상 아쉽고, 한국 최고의 기업이 되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어야 하고,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면 경쟁자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고…….
언제 말단 사원들에게 혜택을 베푼 적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아르헨티나의 현실에서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이 이제는 배곯지 않고 살지만, 허리띠 졸라매야 한다고 강조하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민중들이 허리띠 졸라맨 덕택에 훨씬 더 잘 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에게 “지금 회사가 어려워서……”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오늘 최고급 스포츠카 타고 오셨다. 나: 와 우~~ 사장님 끝내주는 차네요 사장님: 끝내주지 ㅋㅋㅋ, 만일 네가 진짜 정성껏 일을 열심히 하고, 잔업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내가 약속하겠는데, 내년에 내가 이런 차 하나 더 살 수 있을 거야. |
제가 이렇게 한국까지 들먹거리는 것은 아르헨티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가 그렇게 500년이 넘게 흘러왔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배 계층은 항상 이들에게 약속만을 해왔습니다. “너희들도 조금만 참으면 이렇게 잘 살 수 있어”라며 지키지 않을 약속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희생을 강요해온 것입니다. 장장 500년 동안 말입니다. 만일 에비따나 뻬론 정부 없이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잘 되었다면 -물론 그 가정에 대한 결과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이제는 진짜 민중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갔을까요? 가난한 사람도 자전거를 살 만큼 국민 개개인의 사정이 나아졌을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즉 에비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하는데,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나라가 더 발전을 하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 시대에 정권을 잡았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것도 의문입니다만, 그보다 하나 더 나아가서 비록 경제가 나아졌다 해도 대다수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나마 에비따와 뻬론이 있었기에 아르헨티나 국민은 수백 년간의 거짓된 약속의 반복을 처음으로 깨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열심히 일한 사람이 자전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결국 에비따는 성녀인가 악녀인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