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아홉: 에비따의 정신을 이어받은 아르헨티나 좌파: 2005년 여행 일기중에서
치미추리Chimichurri를 소스라고 해야 하나, 아님 뭐지? 어쨌든 양파와 희한한 풀을 섞어서 만든 치미추리라는 양념을 곁들어서 먹는 아르헨티나의 고기 맛은 일품이다. 이곳이 원래 목축으로 발전한 나라인데다가 그 무한한 빰빠Pampa를 보고 나서 그런지 스테이크 맛이 더욱 좋다. 오늘이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날이 되기를 빌면서 좀 사치스럽긴 하지만 고기에 쌀밥까지 먹어야겠다. 웨이터가 감자와 밥 중에 뭘 곁들여서 먹겠냐고 묻는다. 나도 좀 호사스럽게 놈들 하는 대로 한번 시켜볼 요량이다. 뿌레Puré가 있었는데 -그놈의 뿌레라는 감자 으깬 것은 무슨 맛에 먹는지 이해가 안 가는지라- 폼을 잡고 고개를 저은 다음 그 옆에 있는 쌀밥을 시켰다.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며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고 있는데 정치 포스터가 길 밖으로 보인다. 현 대통령인 키르츠네르의 문구가 에비따의 사진과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옳거니 하면서 나가 열심히 카메라로 찍었다. 거기에 쓰여있는 말이 오늘날 중남미 좌파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 주는 것 같아 인상 깊다.
좌파 우파의 다름 또는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차이는 부의 근원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입장,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지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가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이 부는 유지,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가 또 다른 부를 창출하도록 정부가 어떠한 제약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 좌파, 키르츠네르의 입장은 이러한 부가 꼭 개인에 의하여 창출된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한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준 대중에게 일정 부분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회사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사장 입장에서는 그거야 내가 경영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번 것이니 노동자에게 월급을 조금 올려주는 정도야 가능하지만 모든 것은 내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반면 후자의 입장은 사장이 경영을 잘한 면도 없지 않지만 결국 우리가 피땀 흘려 일을 열심히 한 덕택에 회사가 성장한 것이니 우리가 상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서 타협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근본적 생각이 달라서 분쟁이 끊임없다. 하다못해 세금 문제에서도 같은 평 수의 강남 10억짜리 집을 가진 사람이 지방의 2억짜리 집과 비교하여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느냐 마느냐도 큰 의견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런 것도 결국 위에서 이야기한 근본적인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중남미에는 엄청난 부자들이, 10%의 상류층이 국가 부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이룬 부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정당하다면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가?
자본은 이윤을 만들고 그 이윤은 다시 새로운 자본이 되는 선순환이 자본가들에게 존재하고, 없는 놈은 없어서 배우지도 못하고 자본의 부족으로 변변한 가게 하나 내기 힘들다. 결국 없는 놈은 계속 없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남미의 좌파인 키르츠네르가 부자들의 선순환과, 가난한자들의 악순환 고리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과 정책의 기조에는 부를 바라보는, 경제를 바라보는 근본 철학이 존재한다. 16세기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철저히 착취하여 오늘날의 부의 배경이 되는 그들의 자본과 권력과 교육과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그것의 부당함을 이제야 중남미의 좌파가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이러한 정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 개혁의 목소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계획과 철학의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이나 아르헨티나나 모두 국가의 정치 권력과 경제적 부와 사회적 신분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층이다. 이제까지 누리고 있던 그들의 독점적인 기득권을 양보하라는 정부가 들어섰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을 보호해 주고 이권을 챙기던 미국도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외국과 자국 내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할 것이다.
키르츠네르는 최소한 위에서 소개한 포스터에서 보는 대로라면 부의 분배 문제에서 의지가 단호해 보인다. 과연 얼마나 철저히 이러한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의지로 기득권의 반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참으로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은 1971년 결국 ‘중립 자세’를 취하지 않은 바람에 미국이 비호하는 삐노체뜨Augusto Pinochet 군사 쿠데타에 의하여 대통령 궁에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국민의 높은 참여와 희생으로 만든 니카라과의 민주화는 미국의 꼰뜨라Contra에 대한 지원으로 하루아침에 무산되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조금 다르려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 성격의 정부를 출범시킨 우루과이, 혁명 이후 지금까지 못 먹더라도 같이 못 먹고, 잘 먹더라도 같이 잘 먹는다는 부의 분배를 기치로 삼은 쿠바, 막대한 석유를 바탕으로 큰기침을 하는 베네수엘라의 좌파 정권 등이 같이 발을 맞추고 있다. 이제는 나름대로 각국의 의지가 결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적도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중과부적이라 할 만큼 기득권은 5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패배하는 일 없이 그들의 권익을 잘 지켜오고 있다. 자, 이제 한판 붙을 차례다. 아주 쉽게 승부가 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주 지루한 전투가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무지렁이 가난뱅이들의 저항은 계속 그 의미를 더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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