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여덟: 뻬로니즘 version 2.0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뻬론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이미 앞에서 했습니다. 이 뻬론주의는 아르헨티나 좌파의 진보적 정치성향을 집약적으로 설명할 때 유용합니다. 아르헨티나 좌파 맥락의 중심에 놓여 있으니까요.
1951년 에비타가 죽고 1955년에는 군사 쿠데타에 의하여 뻬론마저 망명길에 오릅니다. 그러나 뻬론과 에비타가 가진 강력한 대중적인 기반은 아르헨티나 좌파의 아이콘이 되어 진보 정치운동을 집결하게 만듭니다. 결국 수년간의 혼란을 극복하고 아르헨티나 국민은 다시 뻬론을 대통령에 앉힙니다. 1973년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일 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그의 부인이었던 에비타에 대한 지지는 뻬론의 재혼 부인인 이사벨 뻬론Isabel Perón 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뻬론이 1973년부터 1974년까지 그리고 이사벨 뻬론이 1974년부터 1976년까지 대통령을 하게 됩니다. 뻬론과 뻬론으로 대표되는 아르헨티나 좌파가 정점을 찍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망령이 다시 덮쳐옵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이사벨 뻬론은 하야합니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군부 통치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게 칠 년간의 군사독재를 경험하며 영국과의 전쟁을 치르는 등 국력은 쇠잔해지고 다시 민간정부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등장한 인물이 1989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10여 년간 집권한 뻬론 당의 까를로스 메넴Carlos Menem입니다. 그는 뻬론의 후예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으로, 뻬론을 쿠데타로 몰아낸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감옥살이와 고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을 이루어 94년 8월의 개헌을 통해 재선되어 99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합니다.
이후 뻬론주의가 잠시 주춤하는가 합니다만 실제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99년 10월 24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연합의 대표 데 라 루아(De la Rua)가 49%의 지지를 받아, 38%의 지지를 받은 뻬론당의 두알데 후보에 승리합니다. 이렇게 뻬론당에 맞선 야당이 승리를 하게 되는데, 재미난 것은 이 야당도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으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소속입니다. 즉 진보 성향의 정당으로 페로니즘과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한편 대통령 선거에서는 졌지만 뻬론당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35석을 차지함으로서 여당 연합 21석, 기타 16석을 차지한 상황으로 볼 때 뻬론이즘이나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뻬론과 에비타로 대표되는 정당이 이러한 역사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축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렇게 페로니즘은 2001년 이후 다시 정권을 잡아 2015년~2019년 사이의 4년을 제외하면 아르헨티나의 집권 여당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즉 그만큼 아르헨티나의 정치에서 뻬론과 에비타는 여러 가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사랑받는, 가장 지지받는 정치적인 인물 중 하나라고 하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즉 우리가 아르헨티나에 가서 만나게 되는 아르헨티나 사람 중에 최소 반 정도는 뻬론과 에비타의 정책이 무책임한 대중영합주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포풀리즘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혹은 부정적인 정치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는 아르헨티나의 페로과 페로니즘은 사실 실체가 그런 것도 아닐뿐더러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정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글로벌 라틴아메리카(역사 일반) > 제12장 뻬론과 에비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2장, 넷: 뻬론이 나라 경제 말아먹었다고? (0) | 2023.08.30 |
---|---|
제12장, 다섯: 엄마 찾아 삼만리 (0) | 2023.08.30 |
제12장, 여섯: 뻬론은 누구? (0) | 2023.08.30 |
제12장, 일곱: 에비타는 누구? (0) | 2023.08.30 |
제12장, 아홉: 에비따의 정신을 이어받은 아르헨티나 좌파: 2005년 여행 일기중에서 (2) | 2023.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