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세계화
1492년의 사건은 지난 1000년간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1492년을 계기로 인류는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됩니다. 1492년 이전에는 세계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지구에 사는 인류에게 인위적인 공통의 사건이나 공통의 문제 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인은 유럽인 대로 살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 나름대로 살았습니다. 서로 간섭이나 영향 관계가 미미했습니다. 동양도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실크로드니 뭐니 해서 가끔 서양과 무역을 하긴 했지만 간섭을 하거나 지대한 영향을 주거나 할 정도의 수준은 못 되었지요. 몽고사람들이 서양을 박살 낼 뻔한 사건도 있기는 했지만 긴 역사의 시간으로 본다면 에피소드에 불과했었으니 말이지요. 아메리카 대륙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동서양 사람들은 아메리카 대륙이 있고 거기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아메리카 사람들도 다른 대륙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1492년 이전에는 서로 단절된 각각의 개별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1492년의 사건을 통해 이른바 ‘대항해 시대’로 식민지 개척 시대가 도래하면서 단순히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동안 잘살고 있던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항해 시대를 맞아 서구 열강들의 침입을 받으면서 노예로 붙잡혀가는 엄청난 수난을 겪습니다. 피식민지 국가의 역사를 가진 오늘날의 많은 나라들, 즉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호주 등이 서구 열강의 땅따먹기 게임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을 쓰는 나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치열했던 변화의 양상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에스빠냐의 식민지 지배를 보고 자기들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군침을 흘리던 유럽 제국들에 의하여 세계 전체가 식민지 쟁탈전에 휩싸이게 됩니다.
필리핀은 나라 이름 자체가 펠리페(Felipe)라는 에스빠냐 국왕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지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에스빠냐의 국왕인 펠리페에게 정복당해 300여 년에 걸친 에스빠냐 식민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인도차이나의 기구한 외세 침탈의 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등의 말들이 생겨납니다. 배를 타고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식민지를 건설하여 자국의 깃발을 꽂은 나라가 세계의 주도권을 쥐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 1492년에 일어났고, 그 사건을 계기로 대항해 시대와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개항을 안 해 영향을 매우 늦게 받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음으로 양으로 세계 조류의 파장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 사람들이 사용한 조총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전해준 것이고, 외국인 선원들이 표류하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서양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나라로 인식되지 않은 덕택에 그나마 조용했지만 영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백김치만 먹던 우리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고추를 알게 됩니다. 오늘날과 같은 빨간색 김치를 먹게 된 것도 이런 세계적인 움직임의 영향입니다. 이렇듯 1492년의 사건은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계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