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정치 상황과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으려면 하도 기가 막혀서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다.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계엄을 하고 그걸 옹호하는 인간들이 법원에 침입하여 부수고 난동을 부린다. 이 와중에도 이익을 취하려는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서는가 하면, 정의는 개에게나 준 지 오래된 사법기관은 계산기를 튕기며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상황이 너무 날것 그대로다.
뭐 이런 이야기야 많은 기자, 평론가들이 다 하고 있으니 내가 말을 보탤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굳이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가끔 중남미가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정치적인 후진국인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어쩌고저쩌고”,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현실이 남미의 어디에나 있을 법한…. 어쩌고저쩌고”.
나는 나름 중남미에서 잔뼈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은 시절을 보냈다. 멕시코가 제2의 고향이라고 약을 팔며, 밥맛이 없을 때면 께사딜야(Quesadilla) 먹고 싶어 껄떡대기도 한다. 그렇게 라틴아메리카 이야기로 대학에서 밥 벌어 먹고사는 나로서는 중남미 정치가 후진 정치의 대명사로 인용되는 것을 듣다 보면 영 심사가 틀어진다.
“아니 중남미가 뭐가 어때서? 뭐 안 좋은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항상 중남미 타령이야~~” 쩝. 쩝.
일단 거두절미하고 묻자. 정치와 사회에서 어떤 것은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은 나쁜 것이라는 진화론적인 관점에 입각한 긍정과 부정의 구별 자체에 별로 동의가 안 된다. 정치라고 하는 것도 발전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즉 모든 사물과 이치가 후진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그리고 적은 것에서 더 많은 풍요로운 것으로 발전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보다 현재는 더욱 좋은 것이고 그러다 보니 더 긍정적인 정치 체제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정말 꼭 그런 것인가?
정치가 발전하는 것이라면 분명 우리의 현실은 과거보다 좋아져야 할 텐데 과연 작금의 현실이 친일파가 득실거리던 때와 비교해 그렇게 좋아졌는가? 물론 이런 이야기는 한국적 분위기에서 보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서울대는 지방대보다 좋고, 대학 나온 사람이 고졸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싼 게 비지떡이며, 비싼 게 뭐가 좋아도 좋다는 생각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 역시 발전하여 더 좋은 정치가 만들어 진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수직적인 세상 바라보기에 좀 더 깊은 통찰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이니 다른 기회를 생각하고 일단 접어 두자. 그렇지만 해볼 만한 의미가 있는 논의라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톺아보자.
가난한 쿠바는 정치적인 후진국인가? 우리에게 마약쟁이들의 천국이라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멕시코는 정치적으로 한국보다 나쁜가? 등의 질문들에 우리는 너무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고 산술적인 대답만을 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
멕시코 정부는 현 트럼프 정부에 맞서 미국에 대한 강온 전략을 피고 있다. 미국이 쿠바를 제재할 때 팔 걷어붙이고 쿠바를 도운 나라가 멕시코다. 미국과의 무역이 멕시코 경제에 가장 중요한 변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국에 할 말은 하고 살아왔다. 한편으로 보면 멕시코는 외교적으로 우리보다 선진적이다.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 한번 온전히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멕시코의 외교와 정치는 발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자.
수십 년간의 경제 봉쇄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아무리 가난해도 어떤 국민도 굶어 죽거나 병원비 없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정책을 유지했다. 모든 국민이 평생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굽히지 않았다. 평균수명이 전혀 낮지 않으며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다. 쿠바에서 독거노인이니 고독사는 잊혀진 단어다.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도 역시 가난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미씨온 밀라그로(Misión Milagro)를 통해 가난해서 백내장 수술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안과수술을 무상으로 해주었다. 잘 살지는 못해도 인간 최소한의 존엄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 보니 경제 지표가 나빠져도 국민은 여전히 이런 정부를 지지한다. 이런 베네수엘라 정부를 후진 정부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나라 국민은 뭐라 하겠는가?
중남미 몇몇 특수한 나라의 극단적인 예라고 하기도 힘들다. 그들은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혹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현실과 연결해 고민한다. 이번에 우리나라 대통령 탄핵 사건과 관련하여, 비슷한 사례가 있어 가끔 등장하는 에콰도르나 페루 같은 나라들도 우리나라처럼 자살을 많이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적은 월급을 받더라도 편안하게 사는 것이 돈 많이 주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수다. 물론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런 것 같다. 그런 한국적인 현실의 한가운데 있다 보니 멕시코가 긍정적으로 보일 리 없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쓰기 힘든 쿠바가 한심해 보인다. 멋진 자동차는 없어도,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중남미의 사회는 후진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즉 우리에게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발전한 정치와 후진 정치를 구분하는 기준이 결국에는 누가 더 돈이 많고 적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우리의 생각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이런 기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떤 정치가 좋은 것이냐의 문제에서도 우리는 서양적 신념 속에 있다. 성소수자들에게 라틴아메리카는 더욱 선진적인 나라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우리처럼 왕따를 당하는 현실이 적다. 돈이 없다고, 뚱뚱하다고, 키가 작다고, 영어를 못한다고 결혼조차 하기 힘든 현실은 라틴아메리카와 거리가 있다.
과연 어떤 나라가 훌륭한 나라인가? 혹은 발전한 나라인가?
우리는 너무 우리의 기준에 절대적이다. 아니 그마저도 우리 기준이 아니다. 서양의 기준이거나, 좌우간 누군가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가져다 근본 없이 되뇌고 있다.
사람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나라에 좋은 나라 나쁜 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듯,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들이대며 발전한 정치와 발전하지 않은 후진 정치가 있다는 생각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오늘날 한국의 문제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름 꾸준하게 발전시켜 왔고 앞으로 더 좋아지리라 생각하였으나 순식간에 우리는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터무니없는 인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기점으로 잠복해 있던 병의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안 보였어도 우리의 정치는 결코 훌륭한 방향으로 개선되어 갔던 것이 아니었다. 친일파들이 단죄된 적 없이 이어졌고 오히려 더욱 견고해졌지 않은가. 4.3의 살인자들이 단죄되었나? 반공청년단은 없어졌나? 박정희, 전두환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고 반성하였는가? 등의 질문을 해보면 정치적인 발전이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연장하는 소재로 라틴아메리카는 좋은 연습문제가 될 수 있다. 넓은 생각이 결국 나를 바라보는 힘이 되니 말이다. 그렇게 보다 보면 중남미의 좌파 독재라는 말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포풀리즘이라는 말의 의미도 되새겨 볼 가치가 있다.
그나저나 윤석열은 거짓말 주둥이를 언제나 멈추게 되려나? 그리고 그 사모님은 도둑질한 돈 토해내고 서방님 따라 들어가려나? 희망을 품어본다. 국힘당과 그 오래된 떨거지들이 극소수 정당으로 명맥만 유지하게 되는 꿈을 꿔본다. 아무리 정치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들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체 게바라)라는 생각이 요즘에는 더욱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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