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 칠레의 간단 역사

칠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이곳은 옛날에는 별 중요한 곳도 아니었고 변방에 불과한 땅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변방은 소위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는 것이지요. 항시 중심은 돈 많은 곳이고 변방은 별 볼 일 없는 싸구려라는 현실적인 인식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중심과 변방, 즉 비싼 금싸라기 땅과 평당가격이 몇 푼 안 되는 땅이 구분되는 시기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냐 하면, 바로 1492년 이후가 되겠습니다. 즉 식민지 시대에 들어와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인들이 침략을 하면서 유럽인들이 더 좋아하고 더 많이 사는 곳은 비싼 곳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곳은 별 볼 일 없는 땅이 되는 것이지요.

하여간 그래서 이곳 칠레는 그런 식으로 본다면 식민지 시대에는 인기가 높지 않은 변방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칠레 북부지방의 대부분 땅은 사막으로 인간이 살기가 힘들고 그 반대편인 남쪽도 남극대륙과 맞닿아 있어, 혹독한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사람이 살기 힘든 곳입니다. 기껏해야 중부지방 그러니까 칠레의 수도가 있는 산띠아고Santiago de Chile와 그 주변 지역만이 인간이 살기 편한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멀기도 하고, 대단한 금이나 은이 나는 것도 아니며, 원주민 노동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이 많은 것도 아닌 이 지역에 에스빠냐의 식민지 지배자들은 덜 관심을 가졌던 것이지요. 애당초 이곳에 에스빠냐의 행정력이 미친것도 상대적으로 늦어서, 1557년부터 페루 부왕령副王領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에스빠냐의 통치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른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과 비슷한 시기인 1800년대 초에, 식민지지배에 대한 불만 축적 특히 경제적인 이권에서 에스빠냐 본국과의 이해 충돌이 원인이 되어 혼란의 과정을 거쳐 독립하게 됩니다.

여기에 독립의 두 영웅이 등장하게 되는데 오이긴스Bernardo O'Higgins는 칠레 지역 사람으로 독립을 이끈 사람이고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은 이후 그와 손잡고 독립을 완수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독립 초기에는 중남미 대다수 나라가 그러하듯이 혼란과 갈등이 거듭되었지만, 내전을 수습하고 국가의 기반이 되는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치적인 안정과 발전을 이루는 초석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후 전 세계의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북부 지역에서 발견된 구리와 초석硝石은 칠레의 경제 발전을 이끌게 됩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이권을 장악하려는 칠레의 야욕은 주변 국가와의 이해관계에서 갈등을 빚게 되고 급기야는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볼리비아·페루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Guerra del Pacífico(187983)에서 칠레가 승리함으로써 주요한 초석 광산을 획득하여 잘나가는 국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어서 칠레는 구리와 광업을 중심으로 서구열강 이권 다툼의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주로 영국과 미국이 광산업에 진출하여 칠레의 정치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참견을 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칠레는 칠레대로 자원 주권을 외국에 넘길 수 없다는 좌파 정부도 한 축을 차지하게 되지요. 그렇게 좌파와 우파, 반외세정권과 친외세정권이 공방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사회주의 급진 정당들이 집권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좌우가 격돌을 벌이는 양상을 벌이다가, 급진 좌파의 총화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가 이번 장에서 주로 살펴보고 있는 아옌데 정권이 탄생합니다. 1970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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