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과 10,000원
수업 시간에 500원과 10,000원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특정 노동의 댓가로 -예를 들어 식당의 접시닦이- 우리나라 사람이 한 시간에 10,000원을 받는다면 온두라스 사람은 얼마나 받을까? 혹은 얼마를 받는 것이 맞을까? 라는 질문을 했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가나 환율 등 경제의 복잡한 논의를 해보자는 게 아니라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인 감성을 이야기하자는 겁니다.
어느 보험회사에서 인간의 가치를 나름의 객관성을 가지고 계산해 보았다고 합니다. 직업, 교육, 연령, 경력 등의 기준으로 산출한 자료가 얼마나 객관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한 산출이 가능한, 우리의 의식 구조에 대하여 말하고 싶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인간을 경제 가치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죠. 결국 이 말은 인간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가치(점수)가 다르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만일 특정한 상황이 벌어져서 열 명의 인간 중에 한 명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을 수밖에 없다면 이러한 가치를 산출하여 가장 점수가 높은 사람을 살리겠다는 극단의 가정도 가능해집니다. 잔인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상 현재 지구에서는 이렇게 잔인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 빈곤율이 이렇고 저렇고 혹은 유아 사망률이 이러네 저러네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식상합니다. 한편 한 국가 안에서의 차이도 극명합니다. 잘 사는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고액 과외를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소위 빽으로 군대를 면제받아 다른 사람보다 빨리 졸업하여 좋은 직장을 부모 찬스로 얻는 것이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반면 그렇지 못한 무지렁이들은 비싼 종합 진단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생활고에 허덕이다가 결국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손 한번 변변히 써보지 못한 채 죽고 마는 것이 현실입니다. 너무 극단적인가요? 그러나 이것이 꾸밈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이야기를 다시 한 시간에 10,000원을 받는 금수저와 한 시간에 500원을 받는 흙수저의 문제로 바라보겠습니다. 한 학생이 같은 노동에 대한 임금으로 500원과 10,000원의 차이는 물가의 차이가 아니겠느냐고 되물어봅니다. 이 경우 단순히 물가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 물가를 구성하는 경제력과 경제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의 등급화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단순히 경제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당황했습니다. 역시 많은 학생이 현실적이라는 느낌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인간의 가치의 차이를 전제로 한 임금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쉽게 얘기하면 나는 저놈보다 잘났으니까 내가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하단 말입니다. 이는 정확히 같은 일을 통해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놈보다 더욱 가치 있으니 좀 더 대우받아야 마땅하다는 신분제의 긍정이기도 합니다.
‘대학 교수는 동네 채소가게 아저씨보다 우월한 존재이다? 서울대학생이 경희대학생보다 생산성이 높다? 의사가 천만 원을 버는 것은 정당하고 당연한 일이고, 단순 근로자가 200만 원밖에 못 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연 그럴까요? 니카라과 노동자가 한국 노동자에 비해 열등하니 10%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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