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론 결국 사건치다
꼴론이 원래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의 제노바Génova입니다. 그곳이 동서양 무역의 중심지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직물업자인 아버지와 함께 직물이나 포도주 등을 운반하며 뱃사람으로 지중해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을 거점으로 하는 유럽의 지중해무역이 점점 위축되었지요. 또한 그의 배가 해적의 습격을 받아 고생을 하는 과정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가기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같은 책을 접하면서 서쪽으로 항해하면 동양에 도달하리라는 망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483년과 84년을 거치며 포르투갈의 왕 주앙2세João II 에게 자신의 계획을 제안합니다. 포르투갈은 당시 희망봉을 발견하고 동양무역의 거점을 마련한 최고의 해상국가로서 그의 계획을 실현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당시 최고의 항해술과 과학을 겸비한 포르투갈에서 이런 허황한 계획을 승인할 리가 없었지요. 굳이 오늘날과 비교한다면 지금 우주선을 타고 안드로메다 성운에 가서 금은보화를 캐서 올 테니 나에게 우주선을 내어 달라는 정도의 무모한 계획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당대의 과학자들이나 항해가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에스빠냐 국왕에게 청원하게 됩니다. 1486년 1월 에스빠냐의 이사벨 여왕을 처음 만나서 자신의 벤처사업이 엄청나게 수익성이 좋은 투자라고 설레발을 치게 됩니다. 포르투갈보다 상대적으로 후발 국가인 에스빠냐로써는 나름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빠냐의 모든 과학자와 항해가들이 다 말리고 나섭니다. 계획의 타당성에 대하여 심사를 하고 여기에 꼴론도 참여해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워낙 말이 안 되는 계획이라 다들 반대를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왕이 덜컥 허락하게 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뒷말이 무성합니다만, 여왕이 꼴론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설이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자신이 아끼던 금은 보화를 팔아 꼴론의 항해비에 보태기도 했으니 사실 좀 여러 가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기는 합니다.
하여간 1492년 2월에 항로 개척에 따른 무역 수익의 10%를 꼴론이 가진다는 파격적인 내용의 산따페(Santa Fe)조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해 8월 3일 3척의 배는 에스빠냐 남서부의 시골 작은 항구인 빨로스(Palos)를 출발합니다.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로벌 라틴아메리카(역사 일반) > 제6장 유럽의 정복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6장, 열 셋: 1492년의 사회적인 배경 (0) | 2023.05.31 |
---|---|
제 6장, 열 넷: 새로운 무역로를 찾아서 (0) | 2023.05.31 |
제 6장, 열 다섯: 무식해서 용감했다. (0) | 2023.05.31 |
제 6장, 열 일곱: 인도가 아니라고요 (0) | 2023.05.31 |
제 6장, 열 여덟: 1492년 종합 정리 ... (0)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