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 민중의 생존권을 짓밟다.

바로 이런 이유로 20세기 민중의 저항이 미국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생존권을 위한 저항의 역사가 그렇게 변화된 것이지요. 1492년 이후 3세기에 걸친 식민지시대의 저항이 에스빠냐 정복자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식민지시대가 끝나고 19세기의 저항은 서구열강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는 신식민지주의의 선봉에 섰던 미국에 대한 저항인 것입니다. 이렇게 라틴아메리카 민중 저항의 역사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민중의 저항은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요 부정의에 대한 저항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과 부정의를 통해 배를 불린 집단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 가고 그 밑에서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은 늘 그 모양 그 꼴입니다. 무지랭이들은 언제나 부당함을 감수하며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저항은, 이곳 니카라과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 짓밟힙니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쓰고 그래도 힘들면 미국의 적극 개입을 통해 자기 뜻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혁명 이후 만들어진 민중 정부에 대항하는,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는 꼰뜨라와의 내전 양상이 이어진 것이죠. 결국 동네 어귀에서 기관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대수롭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불안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려는 노력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내전이 끝나고서도 수년이 지난 다음입니다.

21세기를 맞으면 니카라과는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상대로 혁명을 벌였던 오르떼가가 다시 한번 대통령에 올라 강력한 통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신냉전시대의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과연 니카라과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며 지켜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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