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일곱: 투쟁의 깃발이 오르다.
니카라과 국민들의 반소모사, 반독재 투쟁은 소모사가 산디노를 죽이고 독재를 하는 순간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산디노주의라는 뜻의 산디니스모Sandinismo 혹은 산디니즘Sandinism란 단어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이들은 FSLN(Frente Sandinista de Liberación Nacional)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서 투쟁을 전개합니다. 중간에 그리고 이러한 투쟁의 흐름을 바꿀 중요한 전환점이 1978년 1월 10일 발생합니다.
뻬드로 호아낀 차모로Pedro Joaquín Chamorro라는 사람은 자신이 경영하는 라 쁘렌사La Prensa라는 신문에 소모사 정권이 달가워하지 않을 만한 기사들을 써대기 시작합니다. 반소모사 운동을 주동하는 대학생들의 인터뷰 기사도 라 쁘렌사의 지면에 실립니다. 소모사와 그의 패거리들은 이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었겠죠.
전날 어머니의 생일파티를 하고 돌아온 차모로는 1월 10일 아침 8시, 불과 보름 전에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새로 산 자동차를 몰고 자신의 직장인 신문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도 마나구아의 변두리를 지나가고 있었지요. 뒤따르던 자동차에 자신을 노리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8시 15분 그의 차 옆에 멈춰선 괴한의 차에서 총격이 가해집니다. 그의 자동차는 전신주를 들이받고 멈춰 섰고, 그날 오후 그가 일하던 라 쁘렌사 신문의 일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립니다.
그가 암살되다! 니카라과 전 국토에 그의 피가 튀겼다!
¡Mandaron a asesinarlo! y Su sangre salpica a toda Nicaragua!
이 사건을 계기로 니카라과는 반소모사 투쟁의 깃발 아래 결집합니다. 이때를 계기로 다양한 반 소모사 투쟁이 FSLN이라는 이름으로 뭉치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이러한 이념을 산디니스모Sandinsmo 혹은 산디노주의자 라는 뜻의 산디니스타Sandinista 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연대 혹은 개별적으로 게릴라 활동을 하며 수도를 향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차모로가 죽고 일 년 반이 지난 1979년 7월 20일 소모사 타도를 외치던 산니니스모 병사들이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에 입성합니다.
제가 처음 니카라과에 갔을 때, 그러니까 1993년으로 기억합니다. 아직도 전후 복구가 충분치 못해 온통 폐허에,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버스도 변변치 않고, 또 필자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픽업 화물차의 짐 칸에서 니카라과 사람들과 같이 가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는 신기한 외국인이 니카라과 혁명에 대하여 꼬치꼬치 묻는 것이 신기했는지 혁명의 분위기를 알고 싶어 하는 필자를 뚫어질 듯 쳐다보던 한 사람이 자신의 다리를 허벅지까지 걷어 붙이고는 깊은 흉터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시에 자신이 입은 총상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아저씨가 생각나는군요. 그렇게 니카라과는 민주주의와 국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총인구 4백만 중 3만 명이 사망하고 50만 호의 가옥이 파괴되는 희생을 거치며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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