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여덟: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가히 자랑스러울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 투쟁을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독재에 대항하여 정의의 투쟁을 한 니카라과 국민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혁명과는 달리 니카라과 국민은 혁명 이후의 처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해나갔습니다. 혁명에 성공하고도 보수 세력에까지 화해의 손을 내밀어 그들을 끌어안습니다. 좌와 우를 어우르는 중립 내각을 구성하였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도 화합 정책을 폈습니다. 한마디로 빨갱이를 안 했단 말입니다.
국민 통합을 끌어내며 출범한 1980년의 정권이 내세운 국가의 기본 원칙이 이러한 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치 다원주의, 혼합 경제 질서, 비동맹 외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정책 표방은 혁명 이후 니카라과 정부의 성격과 방향, 즉 국가의 모델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쿠바나 칠레처럼 빨갱이 정권 안 만들겠으며(정치 다원주의), 외국 자본도 관대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혼합 경제 질서) 미국을 비롯한 어떤 나라와도 친하게 지내겠다는(비동맹 외교) 의사 표시입니다. 혁명 지도자로 대통령이 된 오르떼가가 나중에 미국 포드Ford사의 무스탕Mustang 오픈카를 타고 선거 유세를 다니기도 합니다. 자본의 상징, 미국 멋쟁이의 상징으로, 미국에서 만든 미국의 자본의 표상인 스포츠카를 타고 연호하는 국민들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만들 정부는 반미도 아니고 반자본도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혁명이라는 고달픈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정부는 그들이 벌였던 투쟁의 목표를 하나씩 실천해 나갑니다. 1979년 당시 50%에 달하던 문맹률이 2년 만에 13%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보건 복지 기반을 확충하여 어린이들의 백신 접종을 시행하고 보건교육을 실시하여 유아사망률을 극적으로 낮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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